내 집 마련의 꿈, 광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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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위여~ 이젠 쓸 거 생각하는 것도 일이네요.
그래서 생각하는 것을 관두겠습니다.
귀찮아서 그러는 건 아닙니다요. (아마도)
니가 내 상사세요? 절망편 555번째
오늘의 주인공은 조선 15댜 국왕 광해군씌 되겠습니다.
인조반정과 중립외교로 이름을 알리신 분이죠.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잠깐 주가를 반짝 올리시기도 하셨습니다만
그 외에는 뭐.. 교과서 정도로만 접하셨다면 크게 기억나는 내용이 마땅히 없으실 겁니다.
끾해야 대동법 시행 정도?가 친숙하게 느껴지실 텐데요.
그 외의 것들은 정말 조금이나마 이제 같이 알아보시죠.
절망편에 이름을 올리기는 하셨으나, 사실 이 얌반이 초기부터 댕판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세자 시절, 선조는 왜군을 피해 ㅌㅌ하기 바쁜데 광해군은 오히려 남아 전투를 지휘하기도 했으며
군수품과 의병을 모집하며 전란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아 이분은 어떤 개 shake it 마냥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지는 않는구나!'
같은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하셨습니다.
정말 사소한 것처럼 보여도 이게 꽤 큰 파장을 일으킬 만한 일이라
명나라와 신하들로 하여금 "선조 까고 걍 광해군 즉위 ㄱ?" 식의 분위기도 만들어질 정도였죠.
1608년, 광해군이 즉위 후에 무난하게 나라를 다스리는가 싶더니
대체 이 양반이 어디서 보고 배워 온건지 궁궐을 막 짓기 시작합니다.
창경궁, 경덕궁, 경운궁, 인경궁, 자수궁 등의 공사가 짧은 기간에 집중되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요.
오죽하면 광해군 3년, 호조 판서 황신이 미네랄 다 떨어졌으니 커맨드 좀 고만 지으라고 까지 합니다.
당시 전란 이후 작살난 재정을 제대로 수습하기 조차 버거운 상황이었을텐데
무리하게 궁궐을 짓고 또 지은 것은 가히 역대급 실책이라 할만합니다.
궁궐을 짓기 위한 동원 및 수탈 대상이었던 백성들의 고역은 말할 것도 없고요.
1623년, 인조반정을 통해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묻고 더블넥을 고집하는 광해군을 폐위 후 강화도로 유배 보내버립니다. 이후 유배지를 옮겨 제주도에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현대에서 광해군은 평가가 조금 엇갈리기는 합니다만,
궁궐을 무리하게 지은 것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딱히 없다고 하네요.
그러게 앞마당까지만 짓지 그랬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