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마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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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를 소재로 한 이유, 그들을 주인공으로 뭔가를 만들어보고자 했던 이유는..
물론 단순히 마녀가 가지는 이미지, 신비성에 끌리는 이유도 있었는데
'멧돼지를 탄 마녀들'(1612)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마녀사냥에서 희생당한 피해자이자, 시대적 과도기를 설명하는 상징적인 소재이기도 해서 그렇습니다.
[마녀사냥]의 대부분이 우리가 흔히 과학 발전과 문화가 꽃을 피우는 시기라 불리던 '르네상스'시대에 가장 활발히 일어났다는 것은 약간 의외의 사실일 겁니다.
당시의 유럽은 과학 혁명으로 인해서 중세에서 근대로 발돋움하던 시기였고, 몇 세기에 걸쳐 (혹은 그 이상으로 뿌리 깊게) 유럽 사회를 지배해왔던 중세의 지배체계 근간이 흔들리던 시기였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면서 도입되는 문물은 지난 시대의 어둠을 들추는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가난과 무지, 부패의 면면이 벗겨지면서 나타나는 기존 기득권 층의 지배력 약화는 국가권력과 교회의 정체성을 시험대에 올렸고, 반대로 기득권을 놓고 싶지 않았던 이들은 스스로의 정당성을 위해서 필요악을 만들어 냅니다.
중세 시대는 종교의 지배 속에 있었으나 권력층 아래의 민간에서는 여전히 예로부터 전해지는 민간요법과 요정, 토착 신앙에 관한 믿음이 혼재하던 사회였습니다. (애초에 까막눈이 대부분인 농민들은 히브리어로 쓰여진 성경을 읽지도 못 했고) 당시의 지식은 말 다했으니 근본을 알 수 없는 민간요법은 언제나 존재했죠.
이런 민간 신앙을 잘 아는 할머니, 점치는 사람, 혹은 그저 마을사람의 시기 질투를 받은 불행한 사람들이 대체로 사회를 위험에 빠트리는 존재인 [마녀]로 지목되었고, 얼토당토 않은 누명이 씌워져 수 만명이 숙청당했습니다.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는 과정에는 고통이 따른다고 하기에는, 그 희생의 대상이 결국 그 시대의 질서를 유지하던 계층이 아니라 가장 아래에 핍박받던 사회의 약자들이었다는 아이러니도 있었습니다.
빛나는 시대에서 어둠의 역할을 맡게 된 [마녀]란 존재는 소위 그들을 고발한 공동체란 사회가 가지고 있는 꿈틀거리는 욕망, 시기 등을 한 몸에 받고 불태워졌습니다.
남은 자들은 '악을 벌하고 선이 승리했다'는 깔끔한 이미지 세탁으로 기존의 질서 체계를 굳건히 해 나갔다고 봅니다. 물론 이후로 밀려오는 시대의 흐름은 막지 못했지만요.
설명할 수 없는 초현실적 존재(또한 비이성적 존재. 걍 쉽게 말해서 신이나 기적)를 규명하는 자들은 권력을 통해 이론을 세우고, 그 이론으로서 권력을 유지합니다.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비판할 수 없게 됩니다. 서양사에서 헤게모니는 대체로 그런 식으로 새로운 질서에 의해 정복당하는 식의 전개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현실과는 반대로 스스로의 지성으로 그런 규율에서 벗어날 수 있고 또 스스로를 지킬 힘을 얻은 존재라면 어떨까.
저는 어떤 현대의 보편적인 사회를 빗대어 중세의 사회를 만들었다면 또한 경계인으로서 그를 비판하는 이들의 관점이 있으면 좀 재미있겠다는 이유로 마녀들을 판타지 세계관에 집어넣게 되었습니다.
완벽히 꾸며진 그런 세계의 닫혀진 한계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고 붕괴되어 가는 그런 모습을 경계에서 바라보는 [마녀]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저는 쓰고 싶었던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마녀 소재로 하면 여캐만 많이 그릴 수 있음 마녀 짱짱 다이스키
아무래도 제가 아웃사이더에 더 끌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형태가 조금 바뀌긴 했지만...
흑사병 창궐, 십자군 전쟁 이후로 피폐한 경제, 동쪽에서 들여온 각종 신문물과 세속적인 종교개혁의 바람은 유럽을 혼란의 도가니에 빠트렸기에 사람들은 어떻게든 평온을 찾고자 했습니다.
또한 마녀를 고문하고 재판하는 비용을 전부 마녀가 부담해야 했고, 또한 마녀로 처형된 사람의 재산은 마을사람들에게 배분되었기 때문에 마녀사냥을 돈벌이에 이용한 집단도 존재했을 뿐 아니라 재산을 노린 일부 역시 그에 동조했을 겁니다. 돈 많은 과부가 주로 마녀로 지목된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었죠.
성직자가 쓴 마녀를 판별하는 책인 '마녀잡는 망치'가 발간되자 당시 교황청에서 몇 번에 걸쳐 직접 비판을 했음에도 엄청나게 유럽 전역에 팔려나갔다는 사실은 그런 시대적 흐름과 광기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