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푸른 모래바람의 사나이
- 435 조회

"아직 어린 녀석이었습니다.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했군요"
본디 케라멧의 뜨거운 사막부터, 북쪽의 혹독한 환경, 용의 잔해가 있는 신비로운 땅까지,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스스로를 단련했건만, 자부심이 있던 나의 실력은 이 넓은 세상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하고 작은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그를 만난 것은 한 여관이였다. 부인의 출산이 임박했다는 서신이 날아왔기에 급하게 사막을 횡단하기 위해, 길을 안내해줄 안내꾼과 식량등의 준비를 위해 잠시 휴식차 들렀던 평범하디 평범한, 어느 마을이던, 고을이건, 도시이건, 나라이건 존재하는 그런 여관이였다. 그는 귀도 좋은지 잠깐 여관의 점장과 말하던 나의 말을 들었는지, 선뜻 내 앞 자리에 앉아 내게 말을 꺼냈다.
"사막을 횡단하시나요?"
그의 행색은 평범하디 평범했다.가벼운 옷, 이동하기 편한 널널한 바지, 모래위를 걷기 쉽게 해주는 넓은 신발, 모험가가 들 법한 휘어있는 날의 곡검 정도....한가지 특이한 점이라고는 이곳에서는 특이한 푸른색 망토를 입고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이곳의 사막에 대하여 잘 알고있으며, 자신또한 사막을 건너가야하니 같이 가자고 말하였다. 내가 가격에 대하여 묻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흥정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흥정에 능숙한 듯 하였기에, 우리 둘다 만족할만한 가격에 손쉽게 이를 수 있었다.
날이 밝고, 우리는 횡단길에 나섰다. 처음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사막폭풍을 만나고, 우리 둘다 곤경에 처할 수 밖에 없었다. 주변의 지형을 바꿀 정도로 강력한 사막폭풍때문에, 우리는 사막을 빙 둘러서 가거나, 다시 마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식량을 넉넉히 가져왔기에, 어느 방식이던 무리는 아니였다만 그는 나에게 단호하게 말하였다.
"지금은 사막 지네들의 번식기입니다. 그쪽으로 돌아서 간다면 녀석들과 마주칠 수도 있습니다"
사막 지네, 거대한 입을 가지고 땅 아래에 굴을 파면서 다니는 사막의 재앙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시력이 거의 없기에, 모래위를 움직이는 존재를 감지해 사냥을 하는 포식자들이었다. 본디 마을에서 아주 멀리 서식하기에 마주칠 일은 극히 드물지만, 이쪽 사막에 서식하는 군체가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고 몇십년간 목격된 적도 없다고 들었기에 나는 반문했다.
"사막 지네들은 분명 오래전 그 씨가 말라버린 것으로 알고있소, 그리고 설사 아직 조금 남아있다고 하여도 그 적은 녀석들 가운데 한 마리가 우리에게 나타나기야 하겠소? 나는 아주 급한 볼일이 있어서 꼭 가야하니, 정 못 가겠다면 나 혼자라도 가겠소"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같이 가겠노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얼마지나지않고 나는 그가 옳았음을 깨달았다.
사막폭풍을 피해 돌아서 사막을 횡단한지 약 닷새 후, 여느때처럼 강렬한 태양빛아래, 그는 나에게 빨리 도망가라고 소리쳤다. 나는 너무나도 뜬금없는 그가 이상하여 오히려 더위라도 먹었나며 물을 주려했지만, 이윽고 땅이 강하게 울리더니 평생 보았던 어떤 생물보다도 커다란 크기의 사막 지네가 땅을 뚫고 나온 것이었다!
그는 바로 뭐라고 소리쳤지만 나는 그 소리가 들리지않았다. 평생 겪었던 어떤 공포보다도 커다란 공포가 나를 덮쳐왔고,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순간 몸의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그가 날 밀친것이었다. 나는 모래 위를 뒹굴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뒤를 돌아보니 그는 나에게 가만히 서있으라는 제스쳐를 취하고는 자신은 열심히 뛰고있었다. 사막 지네는 눈이 없는 수준이라 가만히 있는 대상은 감지하지 못하기에, 그의 대처는 현명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 쳐도 자신은 어쩌할 것인가?
그를 어떻게라도 돕기 위해 발을 때려했지만 움직이지않았다. 날 기다리고 있는 부인과 곧 태어날 아이가 떠올라 차마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그저 초조하게 그를 쳐다보던 와중, 그는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들며 갑자기 멈추었다. 그는 지네에게 맞서싸우려던 것이었다. "자살 행위야!"라고 외치려는 찰나, 땅에서 굉음과 함께 지네가 튀어나왔다. 할 수 있는 것이 지켜보는 일밖에 없어 그 광경을 보던 내가 본 것은, 믿을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그는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지네의 몸의 중간부분의 마디사이의 살을 잘라내었다. 지네는 비명을 지르다 피를 철철 흘리며 모래 위에서 몸부림을 부리다 이윽고 경직되었고, 그는 칼에 묻은 피를 닦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지네의 심장의 위치, 지네의 속도, 지네의 나이까지 전부 고려하여 심장을 정확히 도려낸 것이었다.
이어지는 내용은 맨처음 내가 말한 것과 같았다. 그는 나머지 사막길을 안내해주고 도시로 가는 길앞에서 자신의 길은 이제 사막길을 조금 더 나아가야 한다며 작별인사를 하며 자신의 길로 떠나갔다.
사막의 몰아치는 모래바람사이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은 마치 푸른 모래가 휘몰아치며 나아가는 것만 같았다.
경이로운 실력과 현명함을 지녔으며, 또한 나의 목숨과 우리 가족의 큰 은인인 기묘한 '푸른 모래바람의 사나이'를 기리며, 이 이야기를 마친다.
[원문을 살펴보니 사막 지네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커다란 크기의 성체가 아닌 아직 아성체였던 것으로 보이며, 그것을 처치하는데 사용한 무장도 단검이 아닌 전통적인 케라멧의 낫검으로 보인다. -역사학자 마녀 쉐무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