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란생(卵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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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숲 속에
알이 있었다
평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커다란 알도 아니었다
알 속에서는 생명이 점점 자라고 있었다
크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알은
곧 숲의 관심을 끌었다
풀들은 알을 둘러안았고
나무는 바람을 막아주었고
꽃은 꿀을 속삭여주니
알 속에서는 생명이 눈을 뜨고 있었다
생명은 행복했다
숲속의 모든 것들이
알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너는 자라서 용이 될 거란다”
생명은 자신이 용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비가 많이 내리는 어느 날
생명은 번쩍이는 빛을 느꼈다
천둥의 진동이 온 알을 뒤흔들었다
공포에 떨던 생명은
풀이 꽃이 나무들이
알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저게 바로 용이란다. 저게 바로 너란다.”
생명은 문득 두려워졌다
용은 너무나 위대해보였고
나는 너무나 연약해보였다
생명은 알 속에서 나오는 것이 두려워졌다
크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알은
여전히 숲의 관심을 끌었다
풀들은 알을 옥죄였고
나무는 바람을 뒤흔들었고
꽃은 독을 속삭이니
알 속에서는 생명이 떨고 있었다
생명은 자신을 볼 수 없었다
생명은 알 속에서 나오는 것을 거부했다
몸이 커지고
지각이 생겼지만
생명은 계속 알 속에 있으려 했다
그때
연약한 새 한 마리가
알 위에 앉았다
새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했다
고운 진동이 알에 퍼져나갔다
한 없이 가녀린 그 몸은
알 속을 햇빛으로 채웠다
그 순간
알 껍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흙바닥 강줄기 생기듯
순식간에 금이 퍼지고
무거운 쇠사슬
시원하게 깨지니
마침내 생명은 세상을 보고
마침내 자신을 보았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